
제목 '평가'에 갇힌 교실…"수업 대신 서류 폭탄"
[EBS 뉴스]
선생님의 본업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이죠.
그런데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들이 수업 준비보다 수백 쪽짜리 '평가 계획서' 작성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여기에 평가를 둘러싼 민원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교육의 본질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인데요.
먼저 영상부터 보고 오겠습니다.
[VCR]
매 학기 '150쪽 서류 폭탄'
고교학점제 도입 후 평가 서류 급증
중등교사 93% "평가 계획서 과도"
"수업·생활지도 지장"
현장 교사 1%만
"평가 민원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실제 수업과 따로 노는 평가
본질 회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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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아 앵커
문서 폭탄으로 정작 본업에 몰두하지 못 하는 현실, 교사들이 직접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자세히 짚어봅니다.
중등교사노조의 김희정 위원장 화상으로 연결합니다.
위원장님, 안녕하세요?
최근 중등 교사를 대상으로 '평가 정책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진행하셨습니다.
먼저 이 '평가'에 집중하신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김희정 위원장 / 중등교사노동조합
평가는 원래 학생의 배움을 확인하고 성장을 돕는 중요한 교육 활동입니다.
그런데 요즘 학교 현장에서는 "평가가 본래 기능을 잃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은 지금 평가가 완벽한 계획서만을 위한 평가, 학생부 기록을 위한 평가, 갈수록 민원을 피하기 위한 평가가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평가로 너무 힘들다"는 말씀을 가장 많이 해주세요.
학생들은 수행평가, 지필평가, 서논술형 평가까지 매일매일이 평가입니다.
거기다 굉장히 모순적이게, 교육과정과 실제 평가와의 괴리도 심합니다.
학생들한테 너의 흥미와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라 하면서 결국 평가는 한 줄 세우기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2022개정교육과정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상대평가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왜 평가로 모든 이들이 힘들어하는지, 왜 교육부의 평가가 교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이 문제를 현장의 목소리로 확인해보기 위해 이번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서현아 앵커
교사의 90% 이상이 평가계획서가 과도하다고 답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부담으로 다가가는 걸까요?
김희정 위원장 / 중등교사노동조합
이게 실제 교수학습·평가계획서인데요.
30페이지에 달하는데 이게 1과목 분량입니다.
교육 당국이 하라는데로 작성하면 이렇게 나옵니다.
수업의 질이 서류 분량으로 결정되나요?
사실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평가할지 그 내용만 충분히 들어가 있으면 되는거 아닌가요?
완벽한 문서를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탁상행정입니다.
이 계획서를 학기초에 제출해야 합니다.
요즘 고교학점제로 한 교사가 4~5과목을 가르치면 학기 초에 150쪽 가까운 문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시기가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을 이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점입니다.
그 시간을 대부분 페이퍼 작업에 쓰게 되면서 수업과 평가의 질이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래서 교사들의 90% 이상이 "과도하다", "수업보다 문서가 앞선다"고 답했습니다.
교사들은 사실 누구보다 정말 수업을 잘하고 싶어 하고 좋은 평가를 하고 싶어 합니다.
교육 당국이 평가 계획서를 간소화해 주시면은 저희가 훨씬 더 좋은 수업과 평가를 준비하겠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써야 될 계획서의 분량만 100쪽이 넘는다면 수업 준비는 또 언제 하겠나 싶습니다.
그런데 최근 선생님들 뿐만이 아니고 학생에게도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가는 대표적인 평가가 바로 수행평가가 꼽히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개선해야 될까요?
김희정 위원장 / 중등교사노동조합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세세한 규제와 획일적인 지침입니다.
교과마다 특성이 다릅니다.
활동 중심 교과는 수행평가가 가장 적합하고 개념 중심 교과는 지필평가가 학생의 성장을 가장 제대로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교육청은 수행평가 40% 이상, 정기시험에서 서·논술형 50% 이상 이런식으로 일괄적 지침을 적용해 강제하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결국 학생들은 한 학기에 보통 9과목 정도 듣는데, 수행평가만 해도 30개 전후로 보게 되고, 여기에 지필평가 2회까지 더해지면 학생들은 한 학기 내내 시험만 보다 끝났네 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고등학교에서는 수행평가가 학생부 기록으로 그리고 다시 입시로 바로 연결되다 보니, 결국 교사도 학생도 학습을 위한 평가가 아니라 기록을 위한 평가를 하게 됩니다.
결국 평가의 본질이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개선은 꼭 필요하고요.
우선 무엇보다 일괄적이고 획일적인 지침이 아니라, 교과 특성과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야 합니다.
그리고 대입보다 학습과 성장을 위한 평가로 돌아가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서현아 앵커
네, 획일적인 지침이 평가의 본질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신데요.
최근 또 하나의 큰 화두가 바로 'AI 시대의 평가'입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이 방향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김희정 위원장 / 중등교사노동조합
AI 시대라고 해서 꼭 평가 개혁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기초·기본 교육이 더 중요해져야 한다고 선생님들은 생각하고 계십니다.
AI를 잘 활용하려면 결국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하고,그 질문을 하려면 글을 읽어내고, 이해하고, 자기 언어로 생각하는 근육을 더 착실히 길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책 방향은 암기식 평가는 구시대적이라며 '무조건 지양'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교과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외국어 과목은 기본 어휘를 암기하지 않으면 글을 읽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기초 지식이 필요한 영역이 분명히 있는데도, 모든 교과에 일괄적으로 "암기식 평가는 안 된다"는 식의 지침은, 교육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접근입니다.
저희 교사들은 현장에서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육 전문가입니다.
과목마다, 단계마다, 학생마다 무엇이 필요한지는 교사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가 체계는 교육부에서 일괄적으로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과 특성과 학생 수준에 맞게 설계할 수 있도록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서현아 앵커
네, 무엇보다 현장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하나 최근에 선생님들께서 많이 걱정하시는 부분이 바로 평가로 인한 민원 부담입니다.
교사들이 현장에서 민원에서 자유롭게 수업에만 집중하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김희정 위원장 / 중등교사노동조합
중등에서는 평가가 상급학교 진학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민감도가 매우 높고, 다양한 민원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상대평가에서는 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기 때문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민원에 대응할 수 있는 보호 체계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설문에서도 교사의 75%가 "실질적인 보호 없이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전가된다", 또 4명 중 3명은 사교육 업체가 내 시험 문항을 무단으로 활용하거나 유출되는경험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출제는 그야말로 고도의 전문적인 작업입니다.
교사들은 시험문제 하나를 내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고민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문항들이 저작권 보호도 안되고 학원이나 인터넷에서 내가 만든 문제를 돈을 받고 사고팔기도 하고 그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교사는 민원에는 무방비로 노출되다 보니, 갈수록 평가가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평가 보다 민원을 피하기 위한 '방어용 평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평가 문항의 저작권 보호를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학원법 등 제도를 통해서라도 무단 활용에 법적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평가의 질도, 교육의 신뢰도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현아 앵커
성장의 기록이어야 할 평가가 교사에겐 서류 폭탄과 민원 창구가 된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선생님들이 행정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학생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을 기대해 봅니다.
위원장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