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단독][심층기획] 전 학년 AI 교육? 교사 한 명이 학교 네 곳 돈다
[EBS 뉴스12]
인터뷰: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 (지난해 9월)
"아주 저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마치 수학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배우는 것처럼. 이제는 일상 삶의 기본이 되지 않겠냐…."
수학의 사칙연산을 배우듯, 이제는 AI를 일상의 기본으로 배우는 시대를 열겠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밝힌 미래 교육의 청사진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구호와 달리, 실제 학교 현장의 시계는 더딥니다.
가르칠 교사도, 실습할 기기도 턱없이 부족한 실태입니다.
그 실태를 서진석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대학 실습실.
고등학생들이 GPU를 활용해 직접 인공지능 모델을 설계합니다.
학생 10명당 정보교사가 1명씩 붙는 밀착 지도.
하루 8시간의 집약적인 교육은 학생들의 역량을 단숨에 끌어올립니다.
인터뷰: 이동하 3학년 / 서울 고려대사범대부속고
"이런 것처럼 긴 시간 잡고서 하나에 대해서 좀 자세히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많으면 다른 사람들도 인공지능에 좀 더 흥미를 느끼고 쉽게 다가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발표한 한국의 '글로벌 AI지수'는 세계 13위.
정부는 'AI 3강 도약'을 목표로 보편적 AI 강국을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수도권과 지역의 교육 격차를 줄여, '모두를 위한 AI 교육'을 실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최교진 / 교육부 장관 (지난해 11월)
"수도권에 비해서 좀 부족했던 지역의 AI 교육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그러니까 국가 균형 성장 발전에도 AI 교육이 주요하게 이바지하겠다는 것이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교육부가 내놓은 핵심 과제는 AI 교육 시수를 늘린 중점학교를 확대하는 겁니다.
초등학교는 두 배, 중학교는 1.5배로 수업 시수를 늘린 중점학교를 앞으로 1년 안에 2천 곳까지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학교, 모든 학년에서 AI 교육을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장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을까.
전라남도의 한 섬마을 중학교 관사입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다니며, 일주일에 학교 4곳을 돌며 정보와 인공지능 과목을 겸임하고 있는 한 정보교사의 하루를 동행하겠습니다.
아침 7시, 올해 임용된 새내기 정보교사 이희정(가명) 씨가 도착한 곳은 학교가 아닌 선착장입니다.
풍랑으로 배가 끊기지는 않을지 늘 노심초사입니다.
"표 구매 어디서 해요? 지금 해도 돼요?"
한 달째 이어지는 배멀미는 도통 적응되지 않습니다.
"차 멀미, 배 멀미 때문에 그저께도 멀미를 해가지고 점심을 그냥 안 먹고…."
겸임 학교로 향하는 배에 실을 수 있는 차는 8대뿐.
마지막 순번으로 차를 싣고 다시 운전대를 잡습니다.
인터뷰: 이희정(가명) 정보교사 / 전남 A중학교 (4개 교 겸임)
"전임자 선생님이 저한테 인수인계해 줬을 때 대부분 업무 같은 거 많이 하시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선생님의 업무는 배 타기예요' 이러는 거예요."
이 교사가 이번 학기 맡은 학교만 4곳.
한 곳을 빼면 모두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습니다.
2학기에는 편도 3시간 거리의 섬 학교가 추가됩니다.
인터뷰: 이희정(가명) 정보교사 / 전남 A중학교 (4개 교 겸임)
"제가 2주에 한 번씩 (겸임 학교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교육지원청에 한번 문의를 드렸는데 '그 학생의 학습권 때문에 매주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학습권을 위해서 저를 보내셨는데 제가 그렇게 3시간 가 가지고 이미 지쳐 가지고 힘들어서 수업도 제대로 못 하면 그게 오히려 학생의 학습권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전남의 또 다른 중학교에서 올해 처음 교편을 잡은 박지연 교사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5개 학교를 돌며 정보와 인공지능 과목을 가르치는 동시에, 정보부장과 학부모회, 방송부 업무까지 맡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지연 정보교사 / 전남 B중학교 (5개 교 겸임)
"겸임을 간다라는 건 학교 규모가 작다라는 거고 작다라는 건 한 교사가 해야 되는 업무가 많다라는 의미이거든요. 그러면 저는 겸임도 가지만 업무도 많은 이러한 악순환 속에 있는 거죠."
여기에 더해, 학년별 교육과정까지 달라 학교마다 다른 수업과 평가를 준비해야 합니다.
맞춤형 심화 프로그램이라는 목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터뷰: 박지연 정보교사 / 전남 B중학교 (5개 학교 겸임)
"AI라든가 코딩이라든가 이런 걸 더 하고 싶은 친구들로 이제 동아리를 구성을 한다든가 아니면 어떤 대회를 준비를 한다든가 이런 활동들을 할 수가 있지만, 제가 본교에 있는 날이 한 이틀 이러고 다 겸임을 나간다면 사실 그 아이들과 그런 활동을 계속할 수가 없어요."
실태는 통계로도 증명됩니다.
지난해 9월 기준, 전국 중·고등학교 정보교사 배치율은 75.3%.
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지역 격차는 더 큽니다.
경기는 114%에 달했지만, 강원과 전남은 4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정보교사 5명 가운데 1명은 여러 학교를 함께 맡는 순회교사입니다.
전북과 전남은 그 비율이 절반에 육박했습니다.
정보교사 1인당 담당 학교 수는 전국 평균 1.3곳.
하지만 강원과 전남은 거의 3곳으로 가장 적은 경기의 3배 수준이었습니다.
인터뷰: 정성국 국회의원 / 국민의힘 (교육위)
"그 학생 학교에서 가르쳤다가 다른 학교로 이동해서 수업을 하게 되면 이전에 있던 학교 학생들 같은 경우는 어떤 선생님을 만나 가지고 뭐 하나 질문할 수도 없는 거고. 우리 교육 당국이 좀 세세하게 신경을 써야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학생들이 수업에 쓸 기기도 크게 부족합니다.
AI 학습은 물리나 화학실험과 비슷합니다.
데이터를 넣어 모델을 학습시키고, 결과를 분석해 다시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능을 개선해나가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충분한 컴퓨터 성능과 안정적인 인터넷 환경이 필수입니다.
실제로, 교사의 78.8%는 디지털 교육 강화를 위해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무선망과 디지털 기기 등 안정적인 '인프라' 확충을 꼽았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쓰는 기기는 충분할까요.
학교에서 AI 교육에 쓰이는 디지털 기기는 노트북과 태블릿, 데스크톱 등 세 종류입니다.
우선, 학생 1인당 디지털 기기는 지난해 기준 0.85대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초등학교는 0.75대로 더 적었습니다.
지역별로 편차도 큰데, 경남 지역은 학생 1명당 기기가 0.21대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기기 9대 가운데 1대는 5년 이상 된 노후 장비입니다.
경남과 제주의 경우 노후기기 비율이 30%에 육박했습니다.
딥러닝처럼 고성능 연산에 필수적인 데스크톱 PC로 좁혀보면 상황은 더 열악한데요.
데스크톱 3대 가운데 1대는 5년 이상 된 노후기기로, 경남과 전북에선 그 비율이 50%를 넘겼습니다.
실습 공간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학교당 평균 2곳 수준인데, 전북이 1.18곳, 강원도가 1.14곳에 그쳐 서울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인터넷 환경입니다.
교사 10명 가운데 8명은 AI 교육을 위해 초당 1기가비트(Gbps) 이상의 무선망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기준을 충족한 학교는 4곳 중 1곳에 그쳤습니다.
현장에서는 결국 교육과정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초·중·고 12년 동안 필수 정보교육 시간은 모두 68시간.
이 가운데 AI 교육은 13시간에 불과합니다.
이마저도 중학교를 제외하면 필수가 아닙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정보교사 자체가 없어, 교사 개인의 역량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뷰: 박영환 위원장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일단은 현장에서 지금 뭘 필요로 하는 건지부터 그리고 무엇이 정비돼야 되는지부터 좀 확인을 하고 진행하는 것이 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조건에서 진행하다 보니 지역 격차는 격차대로 나고…."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는 오는 9월까지 인프라 개선을 위한 법령을 정비하고, 내년 초부터 정보교사 배치를 확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AI 3강이라는 구호가 교실 현장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사람과 예산, 인프라를 갖춘 실행이 필요합니다.
EBS뉴스 서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