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심층기획] 통합하는 지방 행정, 갈림길에 선 교육자치
[EBS 뉴스12]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이라는 구조적 위기 앞에서, 정부는 '초광역 행정통합'이라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전남광주 통합 특별법이 얼마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요.
통합의 신호탄이란 평가와 함께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나오고 있습니다.
법안 통과 이후 현장에선 어떤 혼란이 이어지고 있는지,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질 교육 자치는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짚어봅니다.
송성환 기자가 심층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우원식 / 국회의장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안 대안은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대전·충남 강제 합병 결사 반대한다"
행정통합이라는 지역의 명운을 건 거대한 실험이 막을 올렸습니다.
소멸 위기를 극복할 역사적 결단이라는 평가와 주민의 뜻을 외면한 밀실 행정이라는 비난.
국회 안팎에선 기대와 비판이 교차했습니다.
통합의 시계는 지역마다 다르게 흐릅니다.
전남과 광주가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대전·충남과 대구·경북은 반대 여론에 막혀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국회 계단을 가득 메운 찬반 집회는 행정통합이라는 거대 담론 앞에 갈라진 민심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인터뷰: 어기구 국회의원 / 더불어민주당 (충남 당진시 지역구)
"통합이 무산되면 20조 원 정부 지원과 공공기관 이전 기회가 사라집니다. 그 책임, 누가 질 것입니까. 이제라도 국민의힘은 각성하고 충남, 대전 발목잡기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인터뷰: 성일종 국회의원 / 국민의힘 (충남 서산시태안군 지역구)
"엉터리로 만들어 놓고 가짜 무늬만 이 분권이라고 하는 형태로 4년 동안 20조 원 한도 내에서 준다고 하면서 국민을 속이고 있습니다."
정부의 구상은 원대합니다.
대한민국을 5개의 초광역 메가시티와 3개의 특별자치도로 재편하는 '5극 3특' 전략.
수도권 일극 체제를 깨기 위해선 행정의 칸막이를 허물고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중앙정부가 약속한 파격적 재정 지원과 규제 완화는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방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습니다.
정치권은 이를 '골든타임'이라 불렀고, 협상은 속전속결로 진행됐습니다.
인터뷰: 양부남 국회의원 /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 서구을 지역구)
"우선은 이러한 특례법을 만들어서 선통합을 하는 겁니다.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통합으로 인해서 광주든 전남이든 어디든지 피해를 보지 않고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하고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은 점점 보완해 간다는 방침이고."
세 지역의 통합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건 지난 1월 30일.
닷새 만에 지방의회 동의를 얻었고, 일주일 뒤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었습니다.
세 곳의 통합법안에 담긴 조항만 1천1백여 개.
국회는 단 2주 만에 법안 발의부터 심의, 상임위 처리까지 마쳤습니다.
6월 지방선거 일정에 맞추기 위해 주민투표 절차도 건너뛴, 유례없는 속도전이었습니다.
인터뷰: 용혜인 국회의원 / 기본소득당 (행정안전위원)
"어느 정도 촉박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을 꼭 행안위에서 설 전에 모든 논의를 끝낼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회의원들이 한 4~5일 정도의 시간만 더 내면 충분히 두 번 세 번 이상의 숙의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이라고 저는 판단하고요."
행정통합 열차가 이처럼 거칠게 질주하는 동안,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교육은 하나의 빈칸으로 남았습니다.
가장 먼저 우려되는 건 교육 재정입니다.
통합 이후 출범할 '특별시'의 법적 지위가 모호해, 현행 교육 재정 구조 어디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수천억 원 규모의 교육 전입금이 공중에 뜰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인터뷰: 김범주 입법조사관 / 국회입법조사처
"우리가 생각했을 때 특별시는 서울만 있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살았던 거예요. 그게 법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서울특별시는 시세 총액의 10%를 전출하고 경기도와 광역시는 5%를 전출하고 그 밖에 도 및 특별자치도는 3.6%를 전출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 이제 새로 출범하는 통합특별시는 여기에 어느 것도 해당이 안 되잖아요. (통합 지역 6곳 합계가) 4,700억 정도가 되는데 만약에 이거를 입법 불비를 바로잡지 않는다고 하면 내년에는 4,700억 원 총량이 줄어들게 되는 거다."
문제는 돈에 그치지 않습니다.
행정 구역이 거대해질수록 소외 지역이 생기는 이른바 '내부 식민지' 우려도 깊습니다.
농산어촌 지역에선 통합 이후 대도시 중심 행정으로 인해 학교 통폐합과 교원 수급 불균형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큽니다.
인터뷰: 하승수 변호사 /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인 관심이 당연히 이제 도시 지역 중심으로 쏠리게 되고 그러면 농어촌 지역 같은 경우는 이제 그 내부에서는 더 소외를 받는, 그래서 비수도권이어서 소외를 당하고 농어촌 지역이어서 소외를 당하는 이중의 소외를 당하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봅니다."
논란의 중심에는 '특권학교' 조항도 있습니다.
외국인학교, 자율학교, 특목고 유치를 특별법에 명문화한 점입니다.
교육의 다양성을 내세워 인재 유출을 막겠다는 명분이지만, 시민사회는 지역 내 교육 격차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키울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교육의 내실보다는 정주 여건 개선과 표심을 겨냥한 '행정의 도구'로 교육을 소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인터뷰: 안선회 교수 / 중부대학교 중등특수교육과
"교육감 권한이 확대되면서 그 통합시를 중심으로 해서 자사고, 특목고가 더 생길 겁니다. 그럼 자사고, 특목고가 더 생기면 그 지역 내에 누가 이득을 보겠어요? 주로 상류층이 이득을 보고 정치 경제 엘리트 자녀가 이득을 보겠죠. 그럼 교육 격차는 더 벌어지겠죠. 하지만 교육 행정은 누구에게 책임지워야 됩니까? 학교 교육은 주민 전체가 책임을 져야 되는 거예요."
근본적인 질문도 남습니다.
행정통합으로 구축된 '규모의 경제'가 과연 지역을 살릴 수 있을까.
돈과 사람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구조를 바꾸지 않은 채, 행정 기구만 합친다고 인구와 일자리가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냉정한 진단입니다.
인터뷰: 양준호 교수 /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지역 안에서 지역 안을 떠받들어야 할 경제적인 동력, 즉 돈들이 그 지역에서 돌지 못하고 수도권, 서울 쪽으로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경제가 피폐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실증적인 고찰이 없이 행재정을 통합하고 경제권만 통합하고 대중교통망만을 통합한다면 이건 제가 볼 때는 정책적인 성과를 내기가 어려운 그런 상황입니다."
지방선거 이전 통합을 마쳐야 한다는 다급함 속에 법안은 통과됐고,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이제 과제는 교육 행정과 예산, 인사권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교육감을 견제하고, 주민 참여를 실질화 하는 데 있습니다.
인터뷰: 김용 교수 / 한국교원대학교
"2단계 교육자치는 주민 참여를 기반으로 기초 수준의 교육자치로 진화하자. 그래서 생활권에서의 문제를 좀 풀고 교육 행정이 지역의 문제에 대해서 유능함을 보이자. 만약에 저희가 유능함을 보이지 못한다면 제도로서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 행정 효율을 위한 소모품이 될 것인가, 지역을 살리는 마중물이 될 것인가.
행정통합이라는 거대한 변화는 이제 교육 자치 실현이라는 무거운 과제 앞에 놓이게 됐습니다.
EBS 뉴스 송성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