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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경체] 조선 경제의 실핏줄 보부상…역할과 위상은?

[교육,중등,초등,고교]
송성환 기자
작성일
26.02.26

[EBS 뉴스]

서현아 앵커

사농공상의 신분제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지만, 사실상 조선의 경제를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습니다. 


오늘 청소년 경제 체력 기르기 프로젝트에서는 그 주인공인 보부상의 삶을,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와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작가님 어서오세요.


사실 조선은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상인이 상대적으로 좀 낮은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인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존재였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조선시대 사람들의 신분, 흔히 '사농공상'으로 나뉩니다. 


선비, 농민, 공인, 그리고 상인 순입니다. 


당연히 사대부가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았고, 상인은 가장 낮게 여겨졌습니다.


농업 국가였던 조선에서 농민은 나라의 근본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았기에 당시 사회에선 다소 이질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인들이야말로 사회를 유지하는 데 정말 중요했습니다. 


각 지역의 특산물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며 물건의 교류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사실 조선은 국토의 70%가 산이라서 길도 험하고 유통이 발전하기 참 힘들었습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농업 생산량이 늘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상업도 발달하게 되는데요. 


이 변화의 중심에 바로 보부상이 있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말씀하신 것처럼 흔히 '보부상'으로 묶어 부르지만 실제로는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으로 명확히 나뉘었다고 하는데요. 


이 두 집단이 취급하던 물품과 운송 방식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보따리를 들고 다니면 보상, 지게를 지고 무거운 짐을 가지고 다니면 부상입니다.


보상은 주로 귀금속이나 화장품처럼 가볍지만 비싼 물건을 팔았고, 부상은 옹기나 유기 그릇 등 무겁고 부피가 큰 물건들을 팔았습니다. 


같은 상인이었지만 모임도 따로 가질 만큼 엄격히 구분되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보부상들의 활동 덕분에 조선 팔도의 물자 교류가 이뤄졌다고 강조해주셨는데요. 


실제 물품의 이동 경로는 어땠는지 대표적인 사례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이런 보부상의 활약 덕분에 사람들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내륙 깊은 산골에서도 말린 물고기를 먹을 수 있고, 제주도 전복이 함경도까지 팔려 나갔습니다. 


화장품과 장신구, 나중에는 서양 물건들도 보부상들 덕분에 조선 곳곳으로 전달됐습니다.


조선 정부도 이런 상인들을 지원했습니다. 


포항이나 공주 근처에 '나리포창', '포항창' 같은 교제창을 만들었는데요. 


원래 나라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였지만, 상인들이 물건을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지역 상업은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서현아 앵커

척박한 환경을 뚫고 조선 곳곳에 마치 실핏줄처럼 좋은 물건들을 날랐던 보부상들.


보부상들의 역할이 늘고 규모도 커지면서 점점 조직화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어떤 내용입니까?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보부상의 삶은 고단했습니다. 


가족도 없이 혼자 떠돌다 보니, 길 위에서 병이 나거나 세상을 떠나도 챙겨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도와주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상무사'입니다. 


진주, 홍성, 등 전국 곳곳에 세워진 상무사는 처음엔 보부상들이 쉬어가거나 물건을 보관하는 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고 체계를 갖추면서 보부상들의 목소리도 당당해졌습니다. 


서현아 앵커

네, 이렇게 규모가 커지고 조직화되기 시작했다면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일만 했을 것 같지 않은데요.


당시 또 국가에서 또 지역사회에서 보부상들이 했던 역할들이 있었습니까?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그 보부상들의 여러 역할들 중에서는, 이제 보부상이 가장 좋은 것은 각 지역의 지리나 그 정보를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 그 각각 돌아다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조직을 만들기가 굉장히 쉬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그 지역에 위험한 사태가 벌어졌을 때 가장 빨리 자경대를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바로 이런 보부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 역사에서 아주 커다란 사건들, 홍경래의 난이라든가 아니면 동학농민운동과 같은 여러 가지 지역의 사건이 벌어졌을 때 가장 먼저 자경대를 만들어서, 그 조직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동네를 지킬 수 있는 것 역시 보부상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보부상들이 여러 민간이나 그리고 특히 여러 전쟁 때 자기들끼리 이 조직과, 그러니까 한마디로 군대를 만들어서 맞서 싸우고 동네를 지킨 예들이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한때는 상인이지만 동시에 지역을 지키는 예비군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죠.


서현아 앵커

사람을 모으고 결속시키는 데 또 특별한 영향이 있었던 거네요.


진주지역 상무사에는 "우리는 사농공상 중 당당한 하나다"라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당시 보부상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하는데요. 


실제 당시 보부상들의 자기 인식과, 조선 후기 이들이 가졌던 정치적 위상은 어느 정도였나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가장 천대받던 상인이었지만, 자신들이 조선의 경제를 책임진다는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상무사는 기금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동료를 돕고 홍수와 같은 재해에 기부하는 등 사회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 보부상 우두머리인 '접주'들이 관청과 협력하고, 심지어 현감이라는 관직을 받기도 했습니다. 


상인이 정치적 지위까지 갖게 된 것이죠. 


이들이 이렇게 강한 세력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전국 지리에 밝고 현지 상황을 꿰뚫고 있는 엄청난 인적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현아 앵커

네, 근대화 과정에서 보부상이라는 형태는 사라졌지만, 그들의 조직과 정신은 현대의 어떤 기관이나 경제적 토대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물론 시대가 변해 새로운 도로가 뚫리면서 보부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모임은 오늘날의 '상공회의소'로 이어졌고, 그들이 일궈낸 유통망은 조선 후기 경제와 문화를 꽃피우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를 누비는 우리 경제의 역동성, 어쩌면 그 옛날 험한 산길을 넘던 보부상의 발걸음에게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현아 앵커

험준한 산맥도, 엄격한 신분제도 막지 못했던 보부상의 역동성과 자부심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를 누비는 우리 경제 에너지의 진정한 원천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작가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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