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학교통폐합 2편> 멈춰선 10년, 미뤄둔 질문
한때는 전국의 유명 관광지를 제치고, 국내 여행지 방문객 수 2위까지 올랐던 곳.
군산 선유도입니다.
섬과 육지를 잇는 대교가 놓이면서, 사람들의 발길은 한층 잦아졌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관광객이 밀려오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섬을 떠나는 사람이 늘었습니다.
인터뷰: 박종부 이장 / 선유도 2구
"섬에는 지금 초등학교가 하나도 없습니다. 초등학교가 있어도 학생들을 전학시켜서 군산에서 거의 다닙니다. 그래서 학생 수가 없고 어려운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여기 초등학교에 다녔고 그래서 작년에 폐교가 전부 다 됐어요."
섬 한가운데, 7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초등학교.
무지개색 외벽은 빛이 바랬고, 주인 잃은 공간 곳곳에 적막만 고여 있습니다.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 휴교에 들어간 지 1년.
결국, 학교는 문을 닫았습니다.
바로 옆 중학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선생님 여섯 명이 단 한 명의 제자를 위해 수업을 이어왔지만, 올해 마지막 학생이 졸업장을 받으면, 이 섬에서 학교의 역사는 멈추게 됩니다.
인터뷰: 선유도중 관계자
"(초등학교는) 섬에서 보냈지만 중학교라도 친구들이 있는 데서 보내야 하지 않겠나, 근데 저는 부모님 관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더라고요. 초등학교 때는 정서적인 면이나 이런 생각할 수 있지만 중학교까지 그렇게 해버리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뚝 끊겨버린 마을.
지역주민들도 이별에 익숙해진 듯, 이제는 담담합니다.
인터뷰: 박종부 이장 / 선유도 2구
"교육청에서도 학교를 운영하는 데 거의 다 이렇게 적자라는 거예요. 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사나 교장이나 교감이나 영양사가 있기 때문에 그러면 그 한 명 때문에 비용이 많이 지출되지 않습니까?"
학교가 사라지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재난이 아니었습니다.
학령인구 하강 곡선은 이미 50년 전부터 가파르게 기울었고, 모든 국가 기관은 엇비슷한 경고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실제 정책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결국 소규모 학교의 적정규모를 제한하려던 계획을 포기했습니다."
"정부가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먼 거리 통학이 불가피해진 학생과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국가 차원의 학교 통폐합 정책이 마지막으로 발표된 건 2016년.
이후 10년 가까이, 정책은 멈춰 섰습니다.
학교를 지켜야 마을을 지킬 수 있다는 명분,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침묵 속에서, 결단은 늘 내일로 미뤄졌습니다.
그 사이, 학교의 운명은 객관적 수치나 교육여건보다 지역 교육감의 정무적 판단에 좌우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통폐합을 추진하자는 조례와 작은 학교를 살리자는 상반된 조례가 충돌하는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이덕난 교육문화팀장 / 국회입법조사처
"분교장뿐만 아니라 본교가 통폐합되는 일들이 나타납니다. 지난 10년, 20년 동안 학교가 통폐합될 상황에 있었는데 여러 가지 정책이라든가 주민 반발이라든가 이런 것들 때문에 통폐합하지 않고 버티고, 버티고, 버텨온 거죠.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적어도 면 단위에는 학교 하나는 남겨야 한다는 ‘1면 1교’의 원칙.
지역 소멸을 막는다는 최소 방어선이었지만, 이 성벽 안에서 아이들의 세계는 점점 좁아졌고, 도시와의 격차는 돌이키기 힘든 깊이로 패였습니다.
2023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읍·면 지역 초등학생들의 교우 관계 점수는 물론, 수리와 언어 역량 역시 도시 학생들과 빠르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장세린 교사 / 전북 금구초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학교 규모의 양극화가 굉장히 심해지고 있다는 점, 제가 처음 시골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아이들한테 내줬던 숙제가 손톱 깎기, 머리 감기, 양치하기 이런 거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기초적인 보살핌부터 시작해서..."
이미 현실은 원칙을 앞질러 가고 있습니다.
2024년 기준, 전국 3천5백 개 읍·면·동 가운데 283곳엔 초등학교가 없습니다.
중학교가 없는 읍·면·동은 3곳 중 1곳에 달합니다.
현장의 시선도 바뀌고 있습니다.
‘학교를 남길 것인가’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떤 학교가 필요한가’라는 본질을 묻기 시작한 겁니다.
인터뷰: 장세린 교사 / 전북 금구초
"아이들 그리고 교육을 제일 우선순위로 두고 논의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한 학급에 한 명씩 있지만 어차피 사회로 나가야 하거든요. 그러면 그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도 민주시민으로서 적응할 수 있나, 경쟁력을 갖추고 살아남을 수 있나..."
나름의 답을 찾아, 이미 행동에 나선 지역도 있습니다.
인구 감소가 가장 빠른 전북 부안의 하서초등학교.
3년 전, 인근 세 개의 작은 학교를 하나로 합치면서 전교생이 24명으로 늘었습니다.
"왼쪽으로 한 번 보내줘"
늘 혼자였던 세찬이도 이제는 또래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인터뷰: 이세찬 5학년 / 전북 하서초
"그때는 선생님이랑 눈을 마주치면서 상황극을 인물 한두 명씩 맡아서 했어요. 근데 지금은 친구들이 있으니까 수업 듣는 게 재밌기도 하고 그래요."
아이들 역시, 달라진 학교를 몸으로 느낍니다.
EBS가 통폐합 학교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학생 11명 가운데 10명은 통합 이후 토론과 체육 활동 등 수업이 훨씬 다채로워졌다고 답했습니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어울림'이라는 가장 큰 수업이 비로소 시작된 건데, 교사들 역시 아이들의 변화에 주목합니다.
인터뷰: 신현규 교감 / 전북 하서초
"물론 폐교되는 작은 학교는 마음의 상처가 크겠지만 통폐합 이후 시설이나 환경적인 면이 굉장히 많이 좋아지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이에요."
물론 모든 통합이 정답은 아닙니다.
통학 거리와 지역 여건, 무엇보다 아이들의 삶을 중심에 둔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아무 결정도 하지 않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른다는 겁니다.
2035년, 학생 수 60명 이하의 작은 학교는 지금보다 두 배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점점 더 많은 학교가 ‘사라질 것인가, 바뀔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인터뷰: 권수현 교사 / 강원 양구초
"우리가 정말 아이들의 미래를 보고 지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른들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 학교를 살리거나 혹은 이 학교를 통폐합시키려고 하는가 이 문제를 봐야 할 것 같아요."
이제 우리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마을의 지도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의 세계를 외면해 온 것은 아니었는지.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미래를 그릴 방법은 없는 건지.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이 학교는, 과연 누구를 위한 곳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