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학교통폐합 1편> 한계에 선 작은 학교
1965년 대한민국.
학교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커지고 있었습니다.
교실은 늘 부족했고, 아이들의 열기가 공간을 가득 메웠습니다.
성장은 당연했고, 학교는 그 자체로 국가의 심장이었습니다.
입학식 날이면, 운동장은 발 디딜 틈이 없는 '아이들의 바다'가 되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 믿었던 시절.
학교는 더 많이 지어졌고 교실은 더 높이 올라갔습니다.
누구도 학교가 사라질 수 있다는 비극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견고했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2001년, 대한민국은 어느덧 '초저출산 사회'라는 낯선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결혼을 하는 나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아이 낳기를 꺼리는 경향이 계속 확산하면서 출생률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학교는 더 이상 북적이지 않게 됐습니다.
저출생은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재난이 되어 도심 한복판의 역사 깊은 학교마저 '미니 학교'로 바꿔놓았습니다.
"입학생이 줄어드는 현상은 비단 농어촌 지역만의 현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초등학교인데도 올해 신입생이 불과 9명인 학교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무너진 학령인구는 도미노 폐교라는 현실이 됐습니다.
입학식을 열지 못하는 봄, 학생보다 선생님이 더 많은 교실.
버티고, 버티다, 문을 닫는 학교도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학교들의 도미노 폐교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학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아이들의 자리는 빠르게 비어가고 있습니다.
학교.
아이들이 처음으로 사회를 배우는 곳.
함께 관계를 맺고, 서툴게 실패하며, 다시 일어나는 곳.
그동안 우리는 학교를 숫자라는 잣대로만 재단해온 건 아닐까요.
무너진 통계 너머, 우리가 잃어버린 학교의 진짜 의미와 역할을, 지금 새롭게 조명합니다.
충남 보령 천북중학교.
문을 연 지 10년도 안 돼 학급을 열다섯 개나 늘려야 했을 만큼, 아이들로 가득 찼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고웅일 교장 / 충남 천북중
"제가 천북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올 당시에는 초등학교가 4개가 있었어요. 중학교 시절에는 저희 학년 친구들이 한 170명~180명 정도 됐었고, 전교생으로 따지면 한 600명 정도가 생활하는, 사실은 학생 수가 적지 않은 학교였거든요."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을의 청년들이 꾸준히 떠나면서 입학생은 줄었고, 5~6년 전부터는 입학생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습니다.
천북면에 딱 하나 남은 중학교인데, 이제는 전교생을 다 끌어모아도 스무 명이 안 됩니다.
인터뷰: 고웅일 교장 / 충남 천북중
"교장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 어떻게 학생 수를 적정 규모로 유지를 해서 우리 학교를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한 학년을 다 모아도 휑한 체육관.
사격 수업이 한창입니다.
선생님은 아이 한 명 한 명의 자세를 세밀하게 살핍니다.
학생 수가 적은 장점을 살려, 어떻게든 다양한 경험을 심어주려는 노력입니다.
이주영 체육 교사 / 충남 천북중
"참여율이나 아니면 성공률을 높일 수 있게끔 하나하나 개별 지도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계는 뚜렷합니다.
팀을 이루어 배우는 수업, 함께 부딪히며 자라는 경험에는 제약이 있습니다.
인터뷰: 이주영 체육 교사 / 충남 천북중
"인원수가 워낙 적기 때문에 저희 교과에서 팀 스포츠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그런 역량들이 있거든요. 책임감이라든지 리더십이라든지 여러 가지 팀 스포츠에서 얻을 수 있는 역량들이 있는데 그런 걸 하지 못하다 보니까…."
아이들은 변화의 무게를 먼저 체감합니다.
배우고 싶은 건 많지만, 선택지는 적고, 늘 보던 얼굴과 좁은 관계 속에서 새로운 자극은 점점 사라집니다.
어쩌면 이 한계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가로막는 벽이 되지는 않을까.
인터뷰: 김문선 3학년 / 충남 천북중
"지역 자체가 조금 구석에 있는 편이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분야가 되게 많고 배우고 싶어 하는 분야도 많은 편인데 배울 수 있는 인프라가 적은 것 같고요. 아무래도 친구들이 오래된 만큼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점도 있는데 그 부분에서도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학년이 올라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학생 수가 적어 모든 과목의 교사를 두기 어렵고, 상대평가 체제 안에서 진학은 또 다른 부담이 됩니다.
인터뷰: 이주영 체육 교사 / 충남 천북중
"(폐교한 옆 학교의 경우) 3학년 같은 경우에 고입이 진행되는데 4명이 일반 큰 학교에 가도 다 중간 이상은 하는 아이들이에요. 근데 석차를 나눠서 인문계와 비인문계를 이렇게 나눠 가야 하는 상황에서 다 같이 잘하는 친구들인데 원하지 않는 학교에 가야 하는 상황도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더 이상 한 학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올해 입학 예정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초등학교는 200곳에 육박합니다.
해마다 늘었는데, 불과 1년 사이 8%나 급증했습니다.
학생보다 선생님이 더 많은 학교도 지난 2021년 28곳에서, 2024년 33곳으로 늘었습니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모인 서울의 심장부에서도, 입학식 강당의 빈자리는 해가 갈수록 선명해집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
주변에 1천 가구가 넘는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지만, 올해 신입생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애초 배정됐던 5명이 해외로 가거나 다른 학교를 선택한 건데, 이달 말까지 입학생이 새로 나타나지 않으면, 신입생 없이 새 학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인터뷰: 조영태 센터장 /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진짜 몇 년 안 남았다. 2030년 넘어가면서부터는 초등학교는 이미 발생을 한 것 같고 중학교, 고등학교도 다 고려해야 합니다. 서울도 (인구수가) 떨어질 거고 수도권도 다 떨어지고 대구, 부산, 광주 다 떨어집니다."
1980년, 980만 명이 넘던 학령인구는 2030년이면 400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학생 수 감소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배우고, 관계를 맺고,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학교의 시간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주영 교사 / 충남 천북중
"지금은 학생이 총 8명밖에 없거든요. 저희 반에는. 학교에 와서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내가 배워야 할 것, 내가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지 이런 것도 알아야 하는데 우리 학교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이 올라온 친구들로만 구성이 돼 있다 보니까…."
앞으로 5년 동안 통폐합 절차를 밟을 학교는 98곳.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전교생이 다섯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을 포함해, 학교 통폐합 위기에서 자유로운 지역은 없습니다.
단순히 학교를 살릴 것인가, 없앨 것인가.
낡은 이분법은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텅 빈 교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과연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가.
걷잡을 수 없는 인구 감소의 추세 속에서 학교의 모든 역할이 다시 정립되는 시대.
우리는 지금 답이 아닌, 질문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