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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신 안 그럴게" 약속의 힘…학폭 심의 '0건'의 변화 [관계회복 1편]

[교육,초등,고교]
금창호 기자
작성일
25.12.30

[EBS 뉴스12]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된 학교폭력.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 간의 사소한 다툼도 변호사가 오가는 소송전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벌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작 아이들의 관계 회복은 뒷전이 됐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정부가 내년부터 갈등을 교육적으로 푸는 '관계 회복 숙려제'를 도입합니다. 


이미 시행 중인 지역에서는 어떤 변화가 나타났고 보완할 점은 무엇인지, 금창호, 서진석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쫓아가지 않고 놀리지 않겠다."


"찍은 영상은 모두 지우고, 또 찍으려 하면 말리겠다."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빼곡한, 인천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작성한 '약속 이행문'입니다.


전학생이 많아 다툼이 잦고 학교폭력도 자주 발생했던 이 학교는 지난해 '갈등조정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학폭에 휘말린 학생들이 스스로 행동을 돌아보고 화해할 기회를 만든 겁니다.


그 결과 1년에 20건 가까이 열렸던 학폭 심의는, 이번 학기 한 건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곽지순 교감 / 인천하정초등학교

"'힘들었어', '괴로웠어',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어'라는 얘기를 듣고 나면 (가해 학생들이) 꼭 '사과하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해요. 묵은 때 같은 이야기들을 쭉 하고 나면 아이들의 이 갈등이 진짜 얼음이 녹듯이 사르르 내려앉아요."


학폭 사건이 발생하면 교육당국은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학폭 심의위원회에서 징계 여부를 판단합니다.


이때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부모들 사이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갈등조정 프로그램은 이런 학폭위 심의가 이뤄지기 전에 전문가가 미리 개입해 학생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정책입니다.


'관계 회복 숙려제'라고도 불리는데 법적 처벌 대신 교육적 방법으로 학폭을 해결하고 학생들을 성숙한 시민으로 기르자는 취지의 제도입니다.


인터뷰: 박미란 장학사 / 서울특별시북부교육지원청

"갈등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신고해', '너 이렇게 처벌할 거야'보다 훨씬 중요한 건 '갈등 상황이 있으면 이렇게 이야기하고, 이렇게 약속하고, 이렇게 행동하면서 해결하는 거야'라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관계 회복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일부 지역에서부터 제도를 운영했고 실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달 초등학교에 이 제도를 도입한 인천시교육청의 경우 11월 한 달 동안 갈등조정을 63건 진행했습니다. 


이 가운데, 조정을 하지 못해 심의위 절차로 넘어간 건 단 6건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초중고등학교에서 관계 조정 프로그램을 61건 진행한 서울시교육청 산하 북부교육지원청의 경우 조정 성공률이 87%에 이릅니다.


학급 단위로는 갈등 예방 교육도 실시했는데 그 결과 지난해에 비해 올해 초등학교 학교폭력 접수 규모가 38.4% 줄었습니다.


법적 다툼으로 넘어가기 전 관계를 회복하고, 학교 밖 전문가가 사안을 주도하니 현장의 부담도 줄었습니다.


인터뷰: 왕건환 학교폭력책임교사 / 서울 A고등학교

"이런 관계 조정조차도 본인이 충분하지 않고 관계 개선이 안 됐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외부에서 왔던 전문가들이 이 학생들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학폭위에서)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에 좋은 정보들을 이분들이 도와주실 수가 있는 것이죠."


교육부는 이런 관계 회복 숙려제도를 내년 1학기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에 먼저 도입합니다.


초등 1·2학년의 학폭 사건의 경우 '학폭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비율이 30%에 달할 정도로 경미한 사안조차 법적 다툼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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