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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청경체] 조선 성균관부터 일제강점기까지…입시 부정의 역사는?

[교육,초등,고교]
송성환 기자
작성일
25.11.27

[EBS 뉴스]

서현아 앵커

자녀의 진학과 출세를 위해서라면 부정조차 마다하지 않는 입시 비리.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반복돼 온 오래된 문제입니다. 


높은 교육열로 유명한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닌데요. 


'청소년 경제 체력 기르기 프로젝트', 오늘은 이한 역사 커뮤니케이터와 함께 뇌물과 입시 비리에 얽힌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촌지 문화'가 있었죠.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문화가 존재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모습이었나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요즘은 촌지문화 때문에 학교 선생님께 어떤 선물도 드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고 싶어도 무엇도 드릴 수 없게 되어 아쉽기도 하지만, 촌지 관행이 너무 암울했기 때문이지요. 사실 촌지는 학교의 뇌물이었습니다. 


학생의 편의를 봐달라고 주는 거였죠. 


솔직히 뭔가 이득을 노리고 좋은 걸 선물하는 행동은 사람 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나타납니다. 


곰이 쓰레기통을 뒤지기 위해 개에게 뼈다귀를 주는 일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조선시대의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1791년 성균관에서 뇌물사건이 벌어집니다. 


당시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학교였고, 여기서 보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도 엄청난 영예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뇌물을 줬고, 선생님은 그 뇌물의 액수대로 점수를 매긴 겁니다. 


시험이 제대로 치러졌을 리 없습니다. 


그래서 시험 결과가 발표되자, 분노한 학생들은 당시 성균관 총장인 대사성의 방으로 몰려가서 항의했고, 뇌물을 받은 선생의 머리채를 잡는 폭력사태도 벌어집니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요. 결국 이 일에 연루된 학생들, 그리고 뇌물을 받은 선생들도 모두 처벌을 받았습니다. 


서현아 앵커

성균관 같은 교육기관뿐 아니라 매우 엄격하게 치러진 것으로 알려진 과거시험에서도 뇌물이 횡행했다고 하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뇌물이 전달된 겁니까.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조선 때 가장 중요한 교육목표는 과거시험에 급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과거시험은 나라의 인재를 뽑는 시험이기에 굉장히 엄격하게 치러졌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뇌물 및 비리가 섞여들기 시작했습니다. 


1699년에 벌어진 과거 시험이 특히 심했는데, 당시 아이들은 "어사화냐? 금은화냐?"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합니다. 


과거에 급제하면 어사화를 머리에 꽂는데, 돈을 주고 급제한 걸 비꼬는 말이지요. 


원래 과거시험지는 시험지 쓴 사람의 사람 이름을 가리고 채점하는데, 뇌물을 받은 시험관은 이 원칙을 안 지키고 뇌물 준 사람들을 골라 급제시켰다고 합니다. 


이 일로 시험관은 물론 답안지를 나른 하급관원, 심지어 시험장을 지킨 군인까지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큰 사건이었습니다.


서현아 앵커

이런 뇌물이나 특혜가 있었다면, 결국 피해를 본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어떤 사례들이 있었나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어쩌면 이게 입시 비리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인데, 꼼수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정직하게 공부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조선 후기의 천재 이동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원래 출세를 바라지 않다가 어머니의 부탁으로 과거시험을 봤고 장원급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비리 때문에 시험이 무효가 되었습니다. 


이동표는 뇌물을 주지 않고 자기 실력으로 장원급제했는데 피해를 본 거죠.


이 일로 충격을 받은 그는 몇 년 동안 시험을 포기합니다. 


그러다 결국 재도전해서 다시 장원급제하지만, 뇌물은 이처럼 주변의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끼칩니다.


서현아 앵커

이런 입시 비리는 시대와 환경을 가리지 않는 게 또 특징인데요. 


특히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입시 비리 사건은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건이었나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1938년 3월에 있었던 진주고등보통학교 입시문제 누설사건입니다. 


당시 조선 교육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지요. 


당시 진주의 부자였던 백영기가 자기 둘째 아들을 진주고보에 입학시키려고 학교 선생 나가야마 마사유키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현재 진주고보는 진주중학교입니다. 


중학교 입학하려고 뇌물을 준 게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당시 학교가 너무나도 조금 있었기 때문에 입학 경쟁률이 1대 4였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이 재수를 하게 되자, 백영기는 진주고보의 선생이던 나가야마에게 술도 사주고 현금도 건네줬습니다. 


그리고 나가야마는 매일 백영기의 집에 가서 둘째 아들에게 입학시험 문제를 가르쳐줬다고 합니다. 


이 때 진주고보의 입학시험은 2일동안 치러지고, 신체검사와 면접까지 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 시험장에서 친구들에게 "선생님이 시험 문제 다 가르쳐줬다"하고 말하는 바람에 입시 비리가 들통납니다.


서현아 앵커

조선 교육 사상 처음이라고 불릴 정도면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을 것 같은데요. 


어떤 파장이 있었나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당시 입시가 치열했기 때문에, 비리의 소식으로 진주 시내가 들썩였습니다. 


경찰이 출동했고, 진주고보의 교장은 새벽 5시에 첫 차를 타고 경남도청에 가서 사태를 보고했습니다.


결국 조사를 받은 끝에 학부형과 선생 모두 징역을 살게 됩니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검사가 한 말이 인상적인데, "조선 교육사에 씻지못할 오점을 찍고 교육자의 신용을 떨어지게 하고 명예를 손상했다." 


이게 바로 입시 비리의 가장 큰 문제일 겁니다. 


서현아 앵커

이런 역사적 사례들을 볼 때, 지금 청소년들이 어떤 교훈을 얻으면 좋을까요?


이한 / 역사 커뮤니케이터

사실 공부는 힘듭니다. 


공부는 끝도 없고 목표는 까마득하고, 그러다보니 쉬운 길로 가고 싶어질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생은 원래 힘듭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편한 길 보다, 때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시험이 공정해야 하는 것은, 그래야 권위가 있습니다. 


만약 뇌물 액수대로 점수가 정해진다면 그 사람의 실력은 절대 인정받지 못하겠지요. 


그러니 힘들지만 견디십시오. 


성실한 노력은 언젠가 반드시 빛을 볼 것입니다.


서현아 앵커

입시 비리는 선발 제도에 대한 신뢰와 사회의 공정성까지 흔든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공정한 선발'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작가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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